인간이 갖고 있는 죄의 기원 문제는 사려 깊은 사람의 관심을 사로잡고 그 문제에 대한 성경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이 여전히 당혹스러워하는 문제입니다. 철학자 칸트는 인간 속에 근본적인 악이 존재한다고 인식했으나, 그 기원을 설명하지는 못했습니다. 오늘은 조직신학<죄>에 대해 함께 나누겠습니다.
-인간의 타락에 있는 죄의 기원
진화론자들은 야수들로부터 물려받은 경향, 충동, 정욕에서 답을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의 타락을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에게 성경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도덕적 악의 뿌리가 우선 인류의 자연적이고 대표적인 머리인 아담의 죄에 박혀 있다고 가르칩니다.
첫 번째 죄의 본질
첫 번째 죄는 인간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음으로써 저질러졌습니다. 실과를 먹은 행위가 죄였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금하셨기 때문이며 죄의 본질적 특성을 분명하게 드러낸 전형적입니다. 그 특성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길을 따라 인생을 살아 나가기를 거부하고 그것을 스스로 결정해 나가기로 작정한 데 놓여 있습니다.
이 첫 번째 죄에서는 상이한 여러 요소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죄는 지성에서는 불신앙과 교만으로 나타났고, 의지에서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구로 나타났으며, 감정에서는 금단의 실과를 먹음으로써 해소하는 거룩하지 못한 만족으로서 나타났습니다.
첫 번째 죄
인간의 타락은 인간의 마음에 불신과 불신앙의 씨앗을 뿌린 뱀의 시험에 의해 발생했습니다. 시험자의 의도는 분명히 언약의 머리인 아담을 넘어뜨리려는 것이었겠지만 그가 하와에게 다가간 이유는 하와가 언약의 머리가 아니었고 따라서 아담과 동일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고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받지 않고 간접적으로 받았으며 그 결과 논쟁과 의심에 더 취약할 것이기 때문이었으며 아담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둘도 없이 효과적인 대리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말하는 뱀은 많은 해석자에게 큰 걸림돌이었으며 그로 인해 많은 해석자가 타락 기사를 비유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해석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뱀이 사단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고 사단이 진정한 시험자로서 마치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사단이 인간들과 돼지들 안에서 일했듯이 뱀 안에서 뱀을 통해서 일하고 있었다고 분명하게 암시합니다(요 8:44; 롬 16:20).
첫 번째 죄로 인한 결과
이 죄의 결과로 인간은 엄격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 즉 하나님에 관한 참된 지식과 의와 거룩함을 상실했습니다. 나아가 존재의 모든 부분에서 철저히 타락하게 되었고 영적인 선을 조금도 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현실에 나타난 이러한 변화는 그의 자의식에도 반영되었습니다. 죄를 짓고 난 인간에게는 자신이 오염되었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 느낌이 수치감과 죄책감으로 나타났고 그것이 양심의 가책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태도로 표현되었으며 그 외에도 인간은 죽음의 법칙에 종속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낙원에서 추방되었고 행위 언약으로 약속된 생명을 상징하는 생명나무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의 본질적 특성
죄의 진정한 특성에 관해서는 여러 그릇된 견해들이 존재합니다. 죄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오로지 성경에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죄 개념과 관련하여 강조할 점을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죄는 구체적 유형의 악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죄’ 대신에 ‘악’이라는 말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옳지 않은 치환입니다. 모든 죄가 다 악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동일한 확신을 두고 모든 악이 죄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질병은 악으로 간주할 수 있지만, 죄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나아가 죄보다 악을 운위하는 오늘날의 경향은 주로 사람들이 죄를 질병이나 불완전으로, 즉 인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사실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성경은 죄를 구체적인 유형의 악으로, 즉 인간에게 직접 책임이 있고 인간이 사형 판결을 받게 하는 도덕적 악으로 간주하라고 가르칩니다.
죄는 절대적 특성을 내포한다.
윤리 영역에서 선과 악의 대조는 절대적입니다. 둘 사이에는 중립적인 상태가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그로써 이미 악한 존재로 특징지어집니다.
성경은 도덕적 중립성이라는 위치를 알지 못합니다. 성경은 악인들에게 의로 돌이키라고 촉구하며 의인들이 넘어져 악에 빠지는 일을 자주 말합니다. 하지만 의인이나 악인이 중립적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고 암시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간은 옳은 편에 서든가 그른 편에 서는 것입니다(마 10:32; 눅 11:23; 약 2:10).
죄는 언제나 하나님과 그분의 의지와 관련된다.
현대 신학은 죄를 특별한 방법으로, 즉 인간에 비추어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죄란 상대방에게 저지른 그릇된 행동이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본질에서 완전히 벗어난 해석입니다.
그릇된 행동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사실에 비추어 볼 때야 비로소 죄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죄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일에 모자란 것”으로 정의하는 것이 정확하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신적인 법으로써 요구하시는 사랑과 정반대되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죄는 죄책과 오염을 동시에 포함한다.
죄는 법을 어긴 것으로서 그것이 인간들에게 의로우신 하나님께 형벌을 받게 합니다. 사실상 많은 인간이 죄가 죄책을 포함한다는 것을 부정하지만 이것은 죄인이 형벌을 경고받았고 실제로 형벌을 받은 사실과 다음과 같은 성경의 명백한 진술과 모순됩니다(마 6:12; 롬 3:19; 엡 4:17-19).
죄는 외면적 행위들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모든 유형의 펠라기우스 주의자들과 반 펠라기우스 주의자들에 대해서 죄란 외면적 행위들로만 구성되지 않고 죄악된 습관과 마음에 품은 죄로도 구성된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다음과 같이 서로 관련됩니다. 즉, 죄의 상태가 죄악된 습관의 토대이며 이 둘이 다시 죄악된 행위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에 품은 악한 생각과 정서와 의도도 죄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은 다음 구절에 의해 뒷받침됩니다(마 5:22; 롬 7:7; 갈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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